전 세계는 지금 두 개의 봉쇄(blockade) 경쟁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입을 차단하고,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동맥을 위협하고 있다. 양측 모두 에너지 흐름을 교란시켜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고 정치적 양보를 끌어내려 한다.

이란 입장에서는 해상 봉쇄가 정부를 진지한 협상으로 몰아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기술적으로 이란 정부는 여전히 자국의 석유·가스 생산을 통제하고 있으며, 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일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설령 봉쇄가 수입 감소와 장기적인 생산능력 훼손을 초래하더라도, 국민의 삶보다 이념을 우선시해온 체제,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정권이 경제적 고통 때문에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소한 그런 변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 경제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물량 기준으로 볼 때, 이란이 사실상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은 글로벌 원유 시장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급 차질이다. 많은 관측자들은 왜 시장이 예상보다 침착한지 의아해한다. 유가는 상승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만큼 급등하지는 않았고, 특히 주식시장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 공포가 없는 것이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재고와 기대심리가 있다.

이란 공격이 시작됐을 당시 원유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웃돌 정도로 충분히 여유가 있었고, 재고도 높은 수준이었다. 금융시장은 전쟁과 공급 차질이 재고 부족이 본격화되기 전에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현물 유가는 급등했지만, 몇 달 뒤 인도되는 선물 가격은 오히려 더 낮고 계속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 두 개의 봉쇄가 장기화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시장이 비교적 침착한 이유로 자주 제시되는 논리 중 하나는, 이제 석유가 과거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의 석유 집약도(oil intensity), 즉 일정 규모의 경제 생산을 위해 필요한 원유 사용량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게 개선됐다.

업계 자료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첫 번째 오일쇼크가 발생한 1973년에는 2025년 물가 기준 글로벌 GDP 1,000달러를 생산하기 위해 원유 한 배럴의 약 80%가 소비됐다. 정확히는 131리터 수준이다. 이란 혁명 직후인 1980년에는 이 수치가 116리터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52리터까지 떨어졌다.

현재 수준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석유 부담은 50년 전에 비해 약 60% 감소한 셈이다. 만약 경제가 필요로 하는 석유량이 이렇게 줄어들었다면, 과거와 같은 경제 충격을 유발하기 전까지 유가는 훨씬 더 크게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에서 석유 비용 부담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간단한 방법은, 단순히 물가 상승(인플레이션)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에너지 효율 개선까지 함께 고려해 유가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현재의 배럴당 115달러 유가는 숫자 자체는 높아 보이지만, 경제가 실제로 느끼는 부담은 1980년 오일쇼크 당시보다 훨씬 낮다. 오히려 1980년 당시 경제가 체감했던 부담을 오늘날 기준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약 339달러 수준의 충격에 가까웠다는 의미다.

즉,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석유가 경제활동에 필요했기 때문에, 실제 유가 수준은 지금보다 낮았더라도 경제 전체가 받는 충격은 훨씬 컸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재 유가는 아직

1980년식 오일쇼크 수준의 경제적 부담에 도달하려면 추가 상승 여지가 남아 있다는 해석

이 가능하다.

하지만 석유 집약도 개선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오늘날 석유 소비는 고부가가치 분야와 대체재가 거의 없는 영역에 훨씬 더 집중돼 있다. 예를 들어 도로·항공 화물 운송이나 해운 같은 분야다. 이런 활동들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이며, 소비재처럼 가격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 따라서 한번 차질이 발생하면 그 영향은 연쇄적으로 경제 전반에 퍼질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으로 유가 상승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하나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그에 따른 긴축 통화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구매력 약화나 재정·국제수지 악화를 통해 성장 자체를 직접 훼손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는 대체로 평균적인 원유 비용 수준이 핵심 변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현재의 유가 상승은 대체가 불가능한 고부가가치 영역의 석유 사용을 직접 타격하게 된다. 이 경우 발생하는 비용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특정 경제 노드(node)가 멈추면서 발생하는 경제활동과 부가가치 창출의 손실이다.

오늘날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된 석유는 희토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GDP 규모에 비하면 비중은 작지만,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에서다. 만약 공급 차질 규모가 커져 수요 감소가 불가피해지고, 이를 맞추기 위해 유가가 급등하게 된다면, 시장의 반응은 갑작스럽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크고 비대칭적으로 경제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의 부유한 서비스 중심 경제는 사실상 탈출구가 없다.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공급망은 매우 취약해지고, 혼란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확산된다. 두 개의 봉쇄가 길어질수록, 세계 주요 경제권은 우리가 익숙했던 ‘저성장형 침체’가 아니라 위기(crisis)에 가까운 조정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란과 같은 신정체제(theocracy)는 경제적 고통을 억누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경제 안정성을 의도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정책이 결국 정치적 대가로 돌아오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봉쇄된 상태이며, 겨우 유지되던 휴전마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충격이 아직까지 더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은 다른 큰 이유는 미국·유럽·아시아의

전략비축유

가 사상 최대 규모로 방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 세계 민간 상업 재고와, 분쟁 발생 이전에 병목 구간을 빠져나온 유조선들의 지속적인 도착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강력한 충격 흡수 장치 역할을 해왔으며, 유가 상승폭을 어느 정도 제한해왔다. Barclays의 아제이 라자드약샤(Ajay Rajadhyaksha)는 이번 주 이렇게 표현했다.

“세계 경제가 마치 직장을 잃었지만, 기존에 모아둔 원유라는 비상금(nest egg)과 실업수당 덕분에 아직은 비교적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조속히 재개되지 않는다면, 이 비상금은 곧 바닥날 것이고 정부의 지원금도 끊기게 된다. 지금까지 주식시장이 예상외로 견조했던 이유는 기업 실적 호조 덕분이 컸지만,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점점 더 우려를 키우고 있다.

그중 한 명이 JPMorgan Chase 원자재 전략 책임자인 나타샤 카네바(Natasha Kaneva)다. 그녀는 현재의 “풍부한 공급에 대한 환상(illusion of plenty)”이 곧 깨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가을쯤에는 “운영 스트레스 수준(operational stress levels)”이 급격히 높아지고, 더 나아가 “광범위한 시스템 불안정(broader system instability)”까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올해 초 유조선, 파이프라인, 저장기지, 소금동굴 등에 80억 배럴이 넘는 원유를 보유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모든 배럴이 실제로 사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재고 84억 배럴 가운데, 시스템을 운영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넣지 않으면서 현실적으로 활용 가능한 물량은 약 8억 배럴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의 추정이다. 4월 23일 기준으로 이미 약 2억8천만 배럴이 분쟁 충격을 완화하는 데 사용됐다.

겉으로 보면 아직 충분한 완충 여력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해상 부유 저장분(floating storage)은 비교적 빠르게 사용할 수 있지만, 육상 재고 중 즉시 접근 가능한 물량은 약 5억8천만 배럴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파이프라인 유지 물량, 최소 저장 수준, 기타 운영상 제약 때문에 사실상 묶여 있는 상태다.

바로 이것이 ‘재고 하한선(inventory floors)’이 중요한 이유다. 시장은 여전히 수억 배럴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실제 운영 재고(working stocks)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시스템은 급격히 취약해질 수 있다. 이는 인간의 혈압과 비슷한 개념이다. 핵심은 단순한 양이 아니라 ‘순환(circulation)’이다.

재고가 너무 낮아지면 파이프라인은 압력 조절 유연성을 잃고, 터미널은 효율적으로 선적할 수 없게 되며, 정유사들은 필요한 품질의 원유를 제때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트레이더들은 근월물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가격을 올려 부르게 된다. 시스템은 석유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서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 네트워크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운영 물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무너지게 된다.

같은 원리는 정제 제품에도 적용된다. 석유제품 재고는 원유보다 다소 유연하지만, 그중 상당 부분 역시 전략적·운영상 완충재로 유지돼야 한다. 특히 운송과 항공 같은 핵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OECD) 재고는 이런 운영 하한선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으로 OECD의 석유제품 재고(상업용 및 전략비축 포함)는 향후 수요 기준 약 35일치, 대략 16억 배럴 아래로 거의 떨어진 적이 없다. 이는 사실상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실질적 최저선(practical lower bound)을 시사한다.

따라서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는 시나리오에서는, 재고가 임계 수준까지 떨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수요가 강제로 억제(rationing)되기 시작한다.

이론적으로는 재고가 훨씬 더 오래 버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 감소, 정유 가동률 하락,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 둔화를 대가로 해야만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재고를 완전히 소진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실제 발생 가능성도 낮다.

그렇다면 이런 충격은 언제부터 경제를 본격적으로 물기 시작할까?

JPMorgan Chase의 나타샤 카네바(Natasha Kaneva)는 원유 재고 감소를 양파(onion)에 비유한다. 재고는 단순히 “누가 가장 많은 원유를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접근 속도, 경제적 비용, 정치적 의지, 물류적 용이성”에 따라 층층이 벗겨진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벗겨지는 첫 번째 층은 유조선 화물과 해상 저장 물량이다. 이들은 필요한 지역으로 비교적 쉽게 우회·재배치할 수 있다.

그다음은 일반 상업 재고다. 정유시설 탱크, 원유 터미널 저장고, 그리고 미국 Cushing 같은 지역의 저장시설 물량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이후부터는 미국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에 위치한 전략비축유(SPR) 같은 정부 비축유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카네바는 현재 시장이 네 번째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바로 높은 유가가 소비자들의 원유 사용을 사실상 강제로 억제하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흔히 말하는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 단계다.

소비자들은 운전을 줄이고, 산업체는 가동률을 낮추며, 항공사는 운항 일정을 축소하고, 정유사들은 처리량(throughput)을 줄이기 시작한다.

즉 시장은 이제 전략비축유(SPR) 방출과 해상 저장 물량으로 버티던 “관리된(managed) 조정” 단계에서, 가격이 수급 균형의 핵심 도구가 되는 “강제된(forced) 조정”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글로벌 원유 수요는 3월 평균 하루 280만 배럴(mbd) 감소했으며, 4월 들어서는 현재까지 하루 430만 배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5월에는 수요 감소 폭이 하루 550만 배럴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스템이 운영 하한선(operational floors)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가 더욱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요 위축 규모가 커지면서, 현재의 수급 균형 분석상 OECD 상업용 재고는 6월 초쯤 운영 스트레스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층은 무엇일까?

그 이후는… 진짜 괴물(dragons)이 기다리고 있는 영역이다.

운영상 최소 재고(operational minimum stocks)는 일반적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물량이며,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사용을 피하는 재고다. 파이프라인 유지 물량, 탱크 바닥 재고, 라인팩(linepack) 성격의 물량, 최소 터미널 재고, 그리고 일상적인 공급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품 재고 등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재고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운영 차질과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이 급격히 커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JPMorgan Chase의 나타샤 카네바 팀 추산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고 수요 파괴 규모가 하루 550만 배럴 수준에서 안정된다는 가정하에, OECD 상업 재고는 오는 9월쯤 이러한 운영 하한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 카네바와 그녀의 팀은 한동안 비교적 비관적인 전망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분쟁 초기 이후 다른 애널리스트들보다 눈에 띄게 낙관적이었던 Barclays의 아제이 라자드약샤마저도 이제는 갑자기 어두운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바클레이스는 현재 글로벌 재고가 주당 최대 8천만 배럴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만약 상황 변화가 없다면, 재고는 이달 말에도 이미 “위태로운(precarious)”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자드약샤는 이것이 다른 금융시장에도 불길한 신호라고 경고한다.

향후 몇 주는,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세계 경제에 남아 있는 마지막 활주로(runway)와도 같다.

역사적으로 가장 강했던 4월 증시 중 하나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시장이 이번 에너지 충격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버린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위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연되고 있을 뿐

이다. 이제는 위험자산에 대해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완충 장치(buffers)는 지금까지 제대로 작동해왔다. 애초에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일시적 충격(disruption)을 견디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감당하기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해결 없이 시간이 한 주씩 흐를 때마다, 우리는 보험이 바닥나는 시점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JPMorgan Chase 애널리스트들은 따라서 유가가 “비선형적(non-linear)”으로 급등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경우 브렌트유 가격은 훨씬 더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The oil price crunch is looming - Christof Rühl, Financial Times

The growing risk of a ‘non-linear spike’ in oil prices - Robin Wigglesworth, Financial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