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서 테헤란이 배상 요구를 재차 제기하자, 이란을 향해 광범위한 새로운 요구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빠르게 재개방될 것이라는 기대가 약화됐고, 유가는 다시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 역시 이란이 도로변 폭탄과 여러 분쟁을 통해 죽거나 중상을 입힌 모든 사람들에 대해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지난 50년 동안 이란이 살해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위대 유가족들에게도 배상금이 지급돼야 한다.”
트럼프의 새로운 요구는 “향후 모든 협상에 확고하게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에서 이란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는 이란이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 직후 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해당 게시물 직후 요구 범위를 더 확대했다. 그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이란이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발생한 피해와 사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이 이처럼 강경해지면서, 워싱턴과 테헤란이 전쟁 종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 관련 즉각적인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최근까지만 해도 트럼프와 미국 당국자들은 이란과의 합의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시장의 기대를 높였다. 이란과 오만 역시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놓고 병행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브렌트유는 월요일 약 5% 상승해 배럴당 88달러 부근에서 거래를 마쳤다. 앞선 3거래일 동안 5% 넘게 오른 데 이어 상승세가 더욱 확대된 것이다.
유럽 디젤 선물은 10% 넘게 급등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 러시아의 정유시설까지 공격을 받으면서, 세계 경제의 핵심 연료로 평가되는 디젤 시장의 공급이 더욱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는 월요일 이란에 대한 배상 문제가 “우리의 어떠한 협상이나 회담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이란과 미국이 합의한 14개 항목의 양해각서(MOU)에는 전쟁 이후 이란의 “재건과 경제 발전”을 위해 미국과 역내 파트너들이 3,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월요일 이란 당국자들은 배상 요구를 재차 강조하면서, 이 문제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직접적으로 연계했다. 반면 지난 6월 체결된 MOU 문안에는 해당 기금의 “이행 메커니즘”을 합의 서명 후 60일 이내에 마련한다는 내용만 담겨 있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이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대 행위가 계속되는 한, 이 수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은 미국이 불법적인 행위를 중단하고, 봉쇄를 해제하며, 피해를 배상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앞서 트럼프는 일요일, 원유와 천연가스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강제로 재개방하기 위해 새로운 군사 공격에 나서기보다는 이란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더 커지도록 두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일요일 Axio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돈도 없는 이란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 그는 미국의 해상 봉쇄가 이란의 재정적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우리는 지금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We are low-keying it).”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폭격을 확대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위협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동시에 테헤란과 오만 사이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월요일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이 “현재 열려 있으며(open now), 미국이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적 긴장을 다시 고조시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미국이 여전히 그러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쟁 이후 물가 상승을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하면서, 트럼프가 자신이 시작한 분쟁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원 민주당 1인자인 척 슈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를 불법적인 전쟁으로 끌어들였고, 그 불법적인 전쟁에서 패하고 있으며, 이제는 빠져나갈 방법조차 없다. 전략도, 절제도, 진지하게 협상할 능력도 없는 그의 모습이 미군 장병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며, 평범한 미국인들의 생활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한편 이란은 주말 동안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이를 상징하듯 강경파인 전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모센 레자이를 최고위 안보직에 임명했다.
레자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완전히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군사고문을 지냈으며, 앞으로는 전쟁 관련 의사결정과 종전 협상을 조율하는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이끌게 된다.
레자이는 강경파 동료인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를 대신해 해당 직책을 맡게 된다. 졸가드르는 최고지도자의 정치고문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수락했다. 이 같은 인사는 일요일 늦게 이란 국영 이슬람공화국통신(IRNA)을 통해 보도됐다.
한편 주말 동안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락치는 오만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운항 경로를 마련하기 위한 합의가 “매우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락치는 현재로서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 가능성을 배제했지만, 양측이 중재자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경로 제안
전쟁 이전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5분의 1이 통과했던 호르무즈 해협은,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을 장기적으로 끝내기 위한 협상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트럼프는 수개월째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을 요구해왔다.
테헤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재개방 조건으로 제시한 요구사항에는 미국의 이란 항구 해상 봉쇄 해제, 동결자산 해제,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돼 있다. 이란은 또한 자신이 지원하는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 내 세력에 대한 공격을 영구적으로 중단할 것도 요구했다.
다만 이란이 이 같은 조건들을 실제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고수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부 요구사항은 미국이 단독으로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에서는 미국이 지원하는 중재자들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무장해제하고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서 철수시키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일요일 이를 거부했다.
예멘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국제사회 승인 정부군 사이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후티는 일요일 사우디 아람코의 자잔(Jazan) 정유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우디 당국은 화재가 발생했지만 빠르게 진압됐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실제 공격에 따른 것이라면, 하루 40만 배럴 규모의 이 정유단지에서 한 달 사이 최소 두 번째 화재가 발생한 셈이다. 7월 말 위성사진에서도 후티가 공격을 주장한 직후 저장탱크에서 화재가 발생한 정황이 포착됐다.
Trump Makes Sweeping New Demands on Iran as Deal Hopes Dim - Josh Wingrove and Patrick Sy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