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양해각서(Islamabad Memorandum of Understanding, 2026.06.17) 체결 이후 유가는 급격히 매도세를 보였다. 우리는 이번 하락이 과도하다고 판단하지만, 가격이 크게 밀린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원유시장은 페르시아만 공급의 빠른 회복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양해각서 체결 이후 유가는 시장 예상을 훨씬 웃도는 강한 매도세에 직면했다. 이는 우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분석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하락이었다.

이번 매도세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페르시아만 공급 정상화에 대한 성급한 기대감이고, 둘째는 실물 시장에서 나타난 뚜렷한 약세다. 다만 시장이 공급 회복 속도와 그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게다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글로벌 원유 재고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현재 시장은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몇 주간의 가격 흐름을 보면, 시장은 미-이란 간 임시 휴전을 마치 영구적인 합의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판이다. 지난 4달간 확인했듯이, 상황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임시 휴전에 합의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60일 안에 핵 문제까지 다루는 영구 합의에 도달한다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물론 휴전이 연장될 가능성은 늘 열려 있지만, 이는 사실상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서 원유와 LNG 흐름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자체 수급 모델상으로도 3분기까지 원유 시장은 타이트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이는 3월 이후 이어진 큰 폭의 재고 감소세와 맞물린 결과다. 시장이 하방으로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다만 우리 전제는 물동량이 3분기 말께나 전쟁 이전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쪽인데, 현재 가격 수준은 마치 7월 말이면 정상화될 것처럼 반영하고 있다.

배럴당 70달러에 가까운 수준에서, 현재 원유시장에는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2026년 4분기 ICE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85달러로 전망해왔다. 물론 더 약세적인 투자심리와 더 빠른 공급 회복이 결합될 경우, 이러한 전망에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시장이 왜 이토록 공격적으로 매도세를 보였는지, 그 핵심 이유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재개되는 페르시아만 물동량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물동량이 늘고 있다.

선박 추적 데이터상 통과 건수가 증가한 것은 확인되지만, 현재로선 전쟁 이전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최근 일주일간 원유 물동량은 하루 평균 약 700만 배럴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전쟁 전 하루 2,000만 배럴과 비교하면 격차가 상당하다. 다만 페르시아만 원유 공급이 완전히 정상화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 물동량이 반드시 하루 2,000만 배럴까지 회복될 필요는 없다.

사우디와 UAE산 원유 일부가 파이프라인 우회로를 통해 해협을 거치지 않고 있는 만큼, 해협 통과 물동량이 하루 약 1,400만 배럴 선까지만 회복돼도 전쟁 이전 수준에 상응하는 셈이다.

관건은 이런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느냐다. 최근 늘어난 선박 이동 중 상당수는 수개월간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여있던 선박들이 마침내 빠져나가는 것에 가깝다. 반면 페르시아만으로 들어오는 선박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이는 발이 묶였던 선박들이 페르시아만을 떠난 뒤에는 원유 흐름이 다시 둔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ING Research 제공

주황색 선: 페르시아만에서 밖으로 나가는 유조선

하늘색 선: 페르시아만으로 들어오는 유조선

→ 통항 증가의 대부분이 들어오는 배가 아니라 나가는 배.

▶유조선 통항은 회복되고 있지만, 정상화라고 보기에는 이름.

이란 제재 유예

양해각서의 조건 중 하나는 미국이 이란 항구 봉쇄를 해제하는 동시에 이란산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 약속을 지켜 봉쇄를 해제하고 60일간 한시적으로 제재를 유예했다.

이란 원유 수출 회복을 놓고 보면, 미국의 봉쇄 해제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 제재 완화는 이란산 원유의 잠재적 구매자를 추가로 열어주는 효과가 있다. 기존에는 거의 중국에만 판매되던 구조였지만, 이제 다른 구매자들도 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이란 원유 공급이 급격히 늘어난다기보다는, 이란산 원유에 적용되던 할인 폭이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이 실제로 증가하려면 제재가 보다 영구적으로 완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이란은 전쟁 이전 수준보다 하루 약 50만 배럴 정도 생산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부진한 실물 시장

최근 약세의 핵심 배경 중 하나는 결국 실물 원유 시장 자체가 지금 부진하다는 점이다. 구매자들은 가격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매입을 미루고, 대신 보유 재고를 소진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런 실물 시장의 약세는 여러 원유 등급의 할인폭 확대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브렌트 현물은 브렌트 선물 대비 할인 거래되고 있고, 중국이 서아프리카산 원유 화물을 재판매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다만 재고 소진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는 만큼, 재입고(리스토킹)는 결국 어느 시점엔가 일어나야 한다. 현재 선물 커브 형태는 재입고 유인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아서, 보다 의미 있는 재입고가 일어나려면 커브가 좀 더 평평해지거나 콘탱고 상태로 전환돼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중국의 원유 수입이 언제, 그리고 실제로 회복될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겠지만, 중국에서 대규모 재고 재축적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전쟁 이후 중국의 원유 수입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실제 재고 감소폭은 훨씬 더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상하는 재고 재축적 수요는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브렌트유 현물 가격 vs 브렌트 선물 가격 (근월물)

즉시 인도 가능한 브렌트 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 대비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0보다 위에 있으면 현물 가격이 선물보다 비싸고, 0보다 아래로 내려가면 현물 가격이 선물보다 쌈.

▶"공급 부족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고 받아들이며 원유를 적극적으로 구매하지 않음.

페르시아만 물동량 회복과 겹치는 전략비축유(SPR) 방출

페르시아만에서 나오는 원유 흐름이 회복되는 시점은, 각국 정부의 전략비축유 방출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과도 겹치고 있다. IEA 회원국들은 분쟁 초기, 총 4억 1,2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공동으로 방출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이다.

이 물량은 지금도 시장에 계속 공급되고 있다. 미국만 놓고 보면, 5월 이후 전략비축유 방출 규모는 하루 평균 120만 배럴을 넘어섰다.

예상보다 훨씬 강했던 수요 파괴

올해 2분기 수요 파괴 규모는 하루 200만~300만 배럴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었고, 그 대부분은 석유화학 부문과 항공 부문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최근 IEA의 추정치는 수요 충격이 예상보다 훨씬 더 컸음을 시사한다.

IEA는 2026년 2분기 원유 수요가 전년 대비 하루 약 50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기존에 예상했던 2분기 전년 대비 하루 245만 배럴 감소 전망과 비교해 훨씬 큰 폭이다.

수요는 당초 예상했던 산업과 연료 부문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더 공격적인 수요 파괴가 발생했다는 것은 시장이 재고에 의존해야 했던 정도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핵심 질문은 수요가 얼마나 빠르게 회복될 수 있느냐이다. IEA는 글로벌 원유 수요가 올해 마지막 분기에 가서야 전년 대비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커지는 2027년 공급 과잉 우려

페르시아만 원유 공급의 회복이 계속된다는 전제하에, 글로벌 원유시장이 2027년까지 충분한 공급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물론 2027년의 수급 균형은 현재의 펀더멘털에는 큰 의미가 없지만, 시장은 미래를 선반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망은 투자심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3월과 2분기 대부분 기간 동안 높았던 유가는 미국의 시추 활동 증가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27년 미국 원유 생산은 전년 대비 하루 약 5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UAE의 OPEC 탈퇴는 중동 지역의 공급 확대 여지를 키우고 있다. UAE는 전쟁 이전 하루 약 35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현재 생산능력은 거의 하루 430만 배럴에 달한다. 또한 2027년에는 이를 하루 500만 배럴까지 늘릴 계획이기 때문에, 내년 공급에는 상당한 상방 여지가 있다.

이란 역시 추가 공급의 잠재적 원천이다. 다만 이는 미국의 이란 제재가 보다 영구적으로 완화되는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란은 전쟁 이전 수준보다 하루 약 50만 배럴가량 생산을 늘려 하루 약 380만 배럴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2027년에 상당한 공급 과잉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OPEC+가 시장 재균형을 위해 공급을 관리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실행하기는 더 어려울 수 있다. 걸프 국가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산유국들에게 공급을 줄이라고 요구할 경우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는 이미 전쟁 이후 더 높은 생산 할당량을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최근 UAE의 탈퇴와 이라크의 위협까지 고려하면, OPEC+는 회원국들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유시장에 과도하게 쌓인 투기적 숏 포지션

전쟁 기간 동안에는 헤드라인 하나에 가격이 요동칠 수 있는 시장 특성상, 시장 참여자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임시 평화협정 체결 이후 상당한 규모의 신규 매도세가 원유 시장에 유입됐다. 실제로 ICE 브렌트유의 투기적 총 순매도 포지션은 거의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이는 시장의 약세 심리를 방증하는 동시에, 이미 투기적 숏 포지션이 상당히 늘어난 상태라 추가적인 신규 매도 여력은 제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한 ICE 브렌트유 순매도 (숏) 포지션

헤지(Hedge)에 나서지 않는 소비자들

실물시장에서 구매자들이 매입을 미루고 있는 것과 연결해 보면, 선물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은 헤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아마도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수 있다.

최근 Commitment of Traders 데이터에 따르면 ICE 브렌트유에서 소비자들의 롱 포지션은 최근 소폭 증가하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ICE 브렌트유 상업적 소비자들의 순매수 (롱) 포지션

The Curious Case of Collapsing Oil Prices - Warren Patterson, ING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