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원유 가격은 하락 안정화 되었지만, 전 세계적인 석유 처리 능력 부족으로 정제 석유 제품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

원유와 정제유 간의 전통적인 관계는 깨졌으며, 휘발유, 디젤, 항공유 가격은 원유 가격을 훨씬 웃도는 수준임.

전 세계 정제 시설의 약 10%가 가동 중단 상태이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및 기타 지정학적 혼란이 정제 제품 부족과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

Photograph: AFP/Getty Images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최근 미국과 이란이 다시 공습을 주고받았지만,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원유시장의 부담은 한층 완화됐다. 원유 가격은 배럴당 75달러 아래로 내려가며 지난 2월 전쟁이 시작되기 전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다시 격화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원유 가격은 크게 떨어졌는데도 정제 석유제품 가격은 여전히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때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월가는 원유 가격, 특히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 벤치마크를 주시하지만, 서민 경제에서 중요한 건 정제되지 않은 원유값이 아니라 휘발유, 경유, 항공유처럼 실제로 자동차와 트럭, 비행기를 움직이는 연료의 가격이다. 물가와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원유가 아니라 정제유 가격이다.

통상적으로 원유 가격과 정제유 가격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사이에는 정제마진과 약간의 소매 마진이 존재할 뿐이다. 평상시라면 WTI와 브렌트유는 에너지시장 전체를 가늠하는 간편한 지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WTI 가격만으로도 평소 에너지시장 전반의 흐름을 대략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가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원유와 정제유 사이의 전통적인 상관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이를 '바가지 씌우기'(price gouging) 탓으로 돌렸다. 그는 지난 6월 24일 트루스소셜에 "대형 석유회사들이 자신들이 지불하는 원유 가격이 크게 낮아졌음에도 그에 걸맞게 주유소 기름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썼다. 이후 기자들 앞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엑슨모빌, 셰브런 등 업계 대표 기업들을 콕 집어 비판했다.

원유와 정제제품 가격 비교

파란색 선: 브렌트유

검은색 선: 유럽 휘발유

회색: 유럽 경유

빨간색: 유럽 항공유

→ 정제 능력 부족, 특히 러시아의 정제 능력 부족으로 인해 원유 가격은 휘발유, 경유, 항공유 가격보다 더 빠르게 하락했다.

트럼프가 문제 자체를 짚은 것은 맞다. 다만 원인 진단이 완전히 틀렸다. 이는 기업의 부당행위가 아니라 지정학적 격변 때문이다. 휘발유, 경유, 항공유 가격이 원유 가격이 시사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게 유지되는 것은 여러 위기가 겹친 결과다. 무엇보다 세계 정제 능력의 상당 부분이 말 그대로 '불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몇 주째 거의 매일 러시아 정유시설을 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격은 러시아 내 연료 부족을 유발해 크렘린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무려 2,700km 떨어진 정유시설까지 타격 범위를 넓혔다. 지난주에는 러시아 최대 정유시설을 포함해 거의 매일 최소 한 곳의 정유시설이 공격받았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의 경유 생산 능력은 약 3분의 1 감소했으며, 휘발유와 항공유 생산 능력도 크게 줄었다. 최근 두 달 동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 19곳을 공격했고, 일부 시설은 이 기간에 최대 네 차례나 타격받았다. 이들 정유시설의 합산 처리 능력은 하루 약 490만 배럴로, 러시아 전체 정제 능력의 약 70%에 해당한다.

평상시 러시아는 정제제품, 특히 경유를 대규모로 수출하는 국가다. 그러나 현재는 수출을 금지한 상태이며, 시장에서는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에서 연료를 수입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연료 가격에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는 국내에서 원유를 충분히 정제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미정제 원유를 수출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서 이미 형성된 소규모 공급과잉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원유 가격에는 하락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정유사들의 원유 정제 수익

파란색 선: 월평균 정제마진

단위: 배럴당 달러

→ 정유사들이 사상 최고 수준의 정제마진을 누리면서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연료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격은 전 세계 원유 정제 능력 부족을 더욱 심화시키며 정제마진의 급등을 촉발했다.

정유시설은 원유를 다양한 석유제품으로 가공하는 복잡한 설비다. 업계는 편의상 이를 '3-2-1 크랙 스프레드'라는 개략적 지표로 측정하는데, WTI 원유 3배럴을 정제하면 휘발유 2배럴과 경유 등 증류연료 1배럴이 나온다는 계산이다.

이번 달 3-2-1 정제마진은 배럴당 약 60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85년부터 2021년까지 정제마진 평균은 배럴당 약 10.5달러였고, 정제업의 '황금기'로 불리는 2004~2008년에도 배럴당 30달러를 넘은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급등 폭이 얼마나 이례적인지 알 수 있다.

정제유 가격 고공행진의 원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은 아니다. 미국은 2월 이란 공습 개시 이후 유가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해왔다. 이는 원유 공급을 늘려 WTI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정제제품 공급 부족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했다.

중동 지역의 정제 활동 역시 원유 수출 회복세에 비해 여전히 개전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분쟁 발발 이후 연료 수출을 전면 중단했을 뿐 아니라, 정제 가동률을 평소보다 낮게 유지하기 위해 원유 수입량 자체도 대폭 줄이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정제 능력의 약 10%, 하루 약 800만 배럴에 달하는 처리 능력이 가동을 멈춘 상태다. 이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의 연료 소비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전 세계 정제 능력 제약이 장기화될수록, 원유 가격이 낮게 유지되더라도 휘발유·경유 같은 연료 가격은 그만큼 더 오래 높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북반구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며 계절적 수요까지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부담은 당분간 더 커질 전망이다.

Iran Isn't the Only Conflict Vexing the Oil Market - Javier Bias, Bloomberg